국회의원을 제비뽑기로 선출하자면 어떨까. ‘말도 안되는 비합리적인 일’이라는 반응이 돌아올 터다. 그렇지만 우리가 절대선으로 여기는 선거도 비합리적이긴 마찬가지다. 수학자 파울로스의 ‘전원 당선 모델’을 보자. 같은 유권자가 투표해도 단순다수투표제, 결선투표제 등 선거제도를 바꿀 때마다 각기 다른 후보자가 당선된다. 단순다수투표제로 치러졌던 1987년 대통령 선거만 해도 결선투표제였다면 노태우 후보는 낙선했을 것이다.
이지문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전문연구원(44·사진)은 거의 드물게 ‘추첨으로 대표자를 선출하자’고 주장하는 학자이자 시민운동가다. 지난해 추첨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 연구원은 최근 <추첨민주주의 이론과 실제>(이담북스)를 펴냈다. 1992년 육군 중위 복무 때 군 부재자 투표가 당시 여당인 민자당에 몰표를 주도록 조직적 부정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던 그로서는 본격적으로 ‘선거’ 자체를 해부하려 메스를 들이댄 셈이다. 이 연구원은 18일 인터뷰에서 “추첨제를 하면 능력 없는 사람, 심지어는 범죄자나 정신병력자가 정치인이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며 “그런데 선거로 우수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뽑았다는 지난 국회가 우리 국민들에게 얼마나 만족감을 주었나”고 되물었다. 선거제도도 비합리적이지만 뽑는 유권자들 역시 합리적이진 않다. “영국에서는 소속 정당과 이름을 빼고 후보자 사진만 보여주면서 유권자 선호도를 조사했더니 실제 당선자와 85% 일치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