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은 표현의 내용을 전달하는 수단이므로 내용만 전달이 된다면 표현의 목표는 달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표현의 내용규제가 아닌 방법규제는 ‘내용의 전달’이라는 표현의 목표를 훼손하지 않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이 낮은 것으로 받아들여져왔다. “누가 썼는지 저자만 밝힌다면 마음놓고 이야기해도 좋다”는 너그러워 보이는 목소리에 날카로운 헌법이론을 갖다대기는 어려웠다.
표현의 방법규제는 미국연방대법원에서도 중도심사(intermediate scrutiny)가 기본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위헌판결을 받은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참고로 미국, 한국, 독일 모두 국가공권력에 의해 제약되는 기본권이 심대하면 심대할수록 그 공권력행사를 정당화하는 공익이 명백하고 심대해야 한다는 헌법원리가 어떤 형태로든 작동하는데 공권력행사에 대해 더 지대하고 명백한 공익의 창출을 요청하는 행위를 “엄격심사”라고 공히 개념화되어 있다. 중도심사는 이보다 더 낮은 심사를 말한다. 표현의 자유는 표현의 내용에 대한 규제의 경우 엄격심사가 적용되는데 바로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 심사와 등가이다.)
실명제는 사전검열인가
이에 대한 예외가 바로 사전검열인데 사전검열은 방법규제이지만 표현의 발화 이전에 작동하여 합법적인 표현의사를 가진 사람들을 위축시키기 때문에 일반적인 내용규제보다도 훨씬 더 엄격하게 심사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위헌과 등가이다.
청구인측도 실명제를 사전검열로 규정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는데 이 노력은 실패했다. 하지만 아래에서 말하겠지만 ‘사전제한에 대한 엄격심사’라는 값진 열매를 얻었다.
“게시 글의 내용에 따라 규제를 하는 것이 아니고,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삭제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도 않은 바 의견발표 전에 국가기관에 의하여 그 내용을 심사, 선별하여 일정한 사상표현을 저지하는 사전적 내용심사로는 볼 수 없다.”
이번 결정의 비교법적 배경이 되었을 미국연방대법원 McIntyre판결은 선거홍보물실명제에 대하여 저자의 이름은 내용에 해당된다고 하여 실명제를 내용규제로 보아 엄격심사로 위헌판정을 하였다. 청구인측도 저자명 표시에 따라서 내용의 함의가 달라진다면 당연히 내용규제로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헌재는 이에 대해서 아무런 판정을 하지 않고 단지 위와 같이 결정을 하였다. 한상희 교수는 “저자명을 내용으로 보지 않은 것이 아니냐”고 비판하고 헌재가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다른 더욱 너그러운 해석도 있다. 저자명이 내용에 포함된다손 치더라도 인터넷실명제가 절대로 “국가기관이 내용을 심사 선별”하는 것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물론 본인확인정보가 없으면 글을 올릴 수 없으니 “자동적 내용검열”이라고 할 수도 있고 청구인측도 그런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사전검열의 위축효과는 재량의 자의적인 행사가능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재량의 행사여지가 없다면 사실 내용심사라고 할지라도 그래서 사전검열로 분류된다고 할지라도 합헌이 될 수 있다. 본인확인제는 재량의 행사여지가 없는 것은 확실하다. 저자명을 내용으로 보더라도 사전검열은 아니라는 판단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 사전제한에 대한 엄격한 심사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위축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위축효과 발생의 기전이 사전검열의 그것과는 다를 뿐이다. 사실 헌재는 이 부분을 정확히 짚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했다. “사전검열”이라는 말 대신 사상 처음 “사전제한”이라는 표현을 쓰고 “사전제한”이 허용되는 요건까지 설시하였다. 앞으로 수십년은 회자될 문구라고 하겠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헌법적 가치이므로 표현의 자유의 사전 제한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그 제한으로 인하여 달성하려는 공익의 효과가 명백하여야 한다. 본인확인이라는 방법으로 게시판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사전에 제한하여 의사표현 자체를 위축시키고 그 결과 헌법으로 보호되는 표현까지도 억제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자유로운 여론 형성을 방해한다(법익의 균형성)"
사전검열이 표현물 게시여부에 대한 재량권의 자의적 행사 가능성으로 사람들을 위축한다면 본인확인제는 자의적인 수사가능성으로 사람들을 위축시킨다. 어차피 사전검열이 방법규제임에도 금기시되는 이유가 위축효과 때문이라면 강도는 다르더라도 역시 위축효과를 발생시키는 규제에 대해서는 금기시는 못하더라도 엄격하게 심사할 이유는 있는 것이며, 헌재는 바로 이 지점에 매우 합리적인 점진주의적 법리를 창설한 것이다.
위의 문구에서 “명백하여야 한다”는 말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과 연계시킨 것이고 우리나라 헌법학의 숙원 중의 하나인 헌법 제21조의 “사전검열”의 현재 지엽적인 적용범위를 더 넓힌 쾌거라고 본다. 즉 ‘사전검열’의 엄격한 정의를 충족시키지 않아 ‘사전검열’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사전제한’에 이른다면 최소한 엄격한 심사는 해야 한다는 원리의 맹아라고 볼 수도 있다. 실명제 외에 어떤 ‘사전제한’이 있을 수 있을지 모르나 아마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여러 방법규제들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게임제작자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게임사전심의제도나 게임하는 사람들을 제약하는 게임셧다운제들이 우선 생각이 난다.
전혀 명백하지 않은 공익
헌재의 위 ‘공익적 효과의 명백성’ 요구 설시는 빈말이 아니다. 위의 문단의 끝은 위 규범(대전제)이 적용되는 구체적인 사실(소전제)을 언급하여 삼단논법을 잘 마무리짓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본인확인제 이후에 명예훼손, 모욕, 비방의 정보의 게시가 표현의 자유의 사전제한을 정당화할 정도로 의미있게 감소하였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사실 위의 사실판단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청구인측은 무진 애를 썼다. 실제로 2007년 이후에 이루어진 실명제 효용성 연구 보고서 7개를 직접 입수하여 검토하여 가장 최근 연구인 2010년 우지숙 교수의 연구결과를 추인하였고 검토내용을 모두 헌재에 제출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왜 불법정보감소효과가 나타나지 않는지 그 기전을 추측하여 헌재에 제안하였고 이는 결정문에 역시 인지되었다.
"본인확인제에 의하더라도 가해자가 주민등록번호와 명의를 도용하는 경우에는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움"
인터넷의 세계성과 갈라파고스규제
헌재는 실명제로 달성하려는 공익이 명백하지 못함을 다음과 같은 놀라운 문단으로 전개한다.
"우리 법상의 규제가 규범적으로 현실적으로 적용되지 아니하는 통신망이 존재하고 그에 대한 인터넷 이용자의 자유로운 접근이 가능함에도. . . 본인확인제를 규정함으로써 국내 인터넷 이용자들의 해외사이트로의 도피, 국내 사업자와 해외 사업자 사이의 차별 내지 자의적 법집행의 시비로 인한 집행 곤란의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는 바. . . 인터넷은 전세계를 망라하는 거대한 컴퓨터 통신망의 집합체로서 개방성을 그 주요한 특징으로 하므로 외국의 보편적 규제와 동떨어진 우리 법상의 규제는 손쉽게 회피될 수 있고, 그 결과 우리 법상의 규제가 의도하는 공익의 달성은 단지 허울좋은 명분에 그치게 될 수 있음을 간과한 것 (법익의 균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