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슬블로어(whistle-blower). 조직 내 부정행위를 호루라기를 불어 지적하는 사람으로, 흔히 ‘내부고발자’를 일컫는다. 기업이나 정부기관 등에서 벌어지는 부패·불법·비리 등 부정행위에 대해 감시하고, 이를 언론 등 제3의 기관에 제보함으로써 스스로 불법과 부정에 맞선 사람들이다. 최근에는 영화 '내부자들'을 통해 정치와 재벌, 언론에 대한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이 드러나기도 했다. 현실 속 휘슬블로어는 권선징악의 통쾌한 영화 결말과는 많이 다르다. 공익을 위해 자기희생적 고발을 했음에도 조직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 찍히면서 고난과 시련을 쓸쓸히 감내해야 한다. 손가락질 속에 동료로부터 버림 받고, 사회에서도 역할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종국에는 밀려드는 후회에 입을 다물게 되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현실이다. 내부고발자의 삶과 그들이 바로 잡으려 한 부정에 대해 추적하고, 법제도 등의 개선을 통해 그들의 인권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를 살폈다. (편집자)
사진/뉴스토마토
내부비리 폭로, 결과는 '해고'…만신창이가 된 삶
효성중공업에서 16년간 근무했던 K씨. 그는 회사에서 공공연히 자행되던 부정행위에 대해 회사 감사팀에 폭로했지만, 개선조치는커녕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만 싸늘해졌다고 말했다. 심지어 인사조치도 이어졌다. K씨는 효성중공업 PG장(부사장)이었던 조현문 변호사의 행동을 보고 용기를 냈다. 조 변호사는 조석래 회장의 차남으로, 총수 직계로서는 이례적으로 그룹의 비리를 폭로하는 내부고발자의 길을 걸었다.
형인 조현준 사장의 횡령 및 배임 혐의와 함께 이를 은폐, 조작하기 위한 부모의 그릇된 사랑도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검찰 고발 등 법정싸움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때로는 언론을 통해 진실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믿기 어려운 내용들이 그의 입을 타고 세상에 공개됐다. 일각에서는 조 변호사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주목, 그 저의를 따지는 데 주력했다. 효성 측 역시 그에게 '패륜아'라는 주홍글씨를 새기며 반격을 폈다.
K씨도 조 변호사의 길을 따라 걸었다. 그는 지난해 9월 가상수주로 실적을 부풀리고, 또 ERP(전사적 자원관리) 교체 때 이를 털어버리는 수법의 회계 부정 의혹과 함께 오랜 관행으로 치부되던 특약점 문제를 본지에 제보했다. 그가 갖고 있던 내부자료가 증빙됐다. 이를 계기로 그해 10월 말 금융감독원이 총수 일가의 분식회계 및 비자금 조성 의혹 등에 대한 회계감리에 나서는 등 사건은 일파만파 커졌다.
K씨는 끝내 지난해 11월26일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는 당시 심정을 사형선고를 받은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보다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동료들의 집단 따돌림이었다. 한 통의 이메일로 내부고발자의 길로 들어선 그를 지난달 서울 모처에서 어렵게 만났다. K씨는 "42개월 된 쌍둥이 딸을 둔 아빠로 비겁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며 "16년간 다닌 우리 회사가 멍들고, 상처받고,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하면서 방치된 모습을 더 이상 숨죽인 채 볼 수만은 없었다"고 말했다.
회사는 그를 버렸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 회사'라고 했다. 그는 2000년 입사해 영업, 한 분야에서만 16년간 근속하며 5번의 포상을 받은 베테랑이었다. 해고사유는 '근무태만'과 '지시불이행'이었다. 그는 "제 소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워 소중한 일터로 복귀하겠다"고 다짐했다. K씨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부고발을 대하는 이중성…고발자 색출과 집단적 따돌림
지난 2012년 8월 포스코와 계열사들이 동반성장 실적자료를 허위로 제출해 부당 인센티브를 지급받았다는 사실도 내부고발에 의해 세상에 드러났다. J씨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주관하는 '동반성장 실적평가'에서 포스코가 우수한 평가를 받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 동반성장 담당직원들에게 무리한 조작을 유도했다고 폭로했다.
J씨는 공익신고자의 경우 제보자의 신분이 법으로 보호된다고 판단해 이 같은 내용의 내부 비리를 포스코가 시행하는 '신문고’에 신고했다. 그는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라 자신이 완벽한 보호가 될 것이라 여겼지만, 이는 너무나도 순진한 생각이었다. 오히려 자신의 정체가 탄로나면서 고초만 겪었다. 사무용 PC와 전화기가 없는 자리에서 반성문을 쓰듯 '직장예절'에 대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다.
동료 중에서도 누구도 그에게 선뜻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 그는 취재팀과 만나 “가족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고통을 보면서 가슴이 찢어졌지만, 불의를 보고도 나서는 동료가 없다는 점이 더 큰 상처가 됐다"고 말했다. J씨는 끝내 포스코를 그만뒀고, 호루라기재단 사무차장으로 근무하다 현재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J씨는 "공익제보에 대해 대다수 사람들은 동의하고 박수를 보내지만, 정작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내부고발이 나오면 손가락질을 한다"고 이중성을 지적한 뒤, "조직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고발자 색출과 집단 따돌림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라고 말했다.
박흥식 중앙대 교수와 이지문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 이재일 국책연구기관 연구원 등은 지난 2013년 미국과 영국의 내부고발자 NGO 단체인 'GAP'과 '직장과 공적 관심'(Public Concern at Work)의 도움을 받아 국내 내부고발자 33명과 지난 20년간 내부고발자 사회적 지원을 맡아왔던 7명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