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미운털이 박혀 쫓겨나게 된 장교가 국가유공자 훈장을 받는 ‘사건’이 2011년 2월에 있었다.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주요 부패 신고자를 선정해 치하하는 국민신문고대상 시상식에서였다.
전역을 앞둔 해군소령 김영수 씨(45·해사 45기)는 최고상인 ‘보국훈장 삼일장’을 수상했다. 전사에 준하는 공을 세워야 가능한 국가유공자 자격까지 부여돼 군인으로선 더없는 영예를 안았다. 부리부리한 눈매에 새까만 피부, 각진 턱. 전형적인 군인 용모를 한 김 씨는 시상식 내내 눈물을 흘렸다.
‘감격의 눈물’은 아니었다. 그날 김 씨의 하객은 한 명도 없었다. 부인과 두 자녀마저 “당장 생계가 막막한데 상이 무슨 소용이냐”며 오지 않았다. 해군 제복을 입은 키 185cm의 거구는 시상식 내내 혼자 덩그러니 있었다. 다른 수상자들은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 축하객과 기념사진을 찍다가 김 씨를 안타깝게 쳐다봤다. 1991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20년간 입어온 남색 제복이 김 씨는 더이상 자랑스럽지 않았다.
김 씨는 2006년 계룡대(육해공군 통합기지) 근무지원과장으로 근무하면서 군납비리를 폭로했다. 당시 간부들은 사무용 가구와 전자제품을 정상가보다 일부러 비싸게 사들인 뒤 나중에 차액을 가로채는 수법으로 수억 원을 빼돌렸다. 국방부 특별조사단은 김 씨의 제보를 토대로 조사에 착수해 9억4000만 원의 국고가 낭비된 사실을 확인했다. 권익위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조직 내 불의와 투쟁한 용기를 높이 사 5년 뒤 김 씨를 수상자로 정했다.
하지만 김 씨는 내부고발로 혹독한 보복을 받아야만 했다. 동기 가운데 선두그룹을 달리던 그였지만 근무평정에서 최하등급을 받았다. 보급 주특기와 전혀 무관한 국군체육부대로 발령받아 사관학교 후배를 상관으로 모시며 근무했다.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는 이유로 징계도 받았다. 나중에는 직제에도 없고 책상도 없는 보직을 받아 부대 내 떠돌이처럼 지내야 했다. 김 씨는 비리 연루자들을 보호하는 군 조직과 5년간 싸우며 일부 간부의 진급비리 단서까지 확보했지만 무마 압력에 시달리며 절망했다. 해사 생도 땐 축구부 주장, 임관 후엔 동기회장을 하며 동료들의 구심점이었던 김 씨는 권익위 훈장을 받은 지 넉 달 만인 2011년 6월 해군을 떠났다.
김 씨는 공공기관 감사실에 취업하려 했지만 이미 블랙리스트에 오른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권익위에서 받은 국가유공훈장이 희망의 씨앗이 됐다. 그의 부패고발 경력과 ‘10% 가산점’에 힘입어 전역 한 달 뒤 권익위에 6급 조사관으로 채용된 것이다. 내부고발 이후 성공적으로 새 삶을 시작한 희귀 사례다.
10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권익위 사무실에서 김 씨를 만나 내부고발자로 살아남는 법에 대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