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이번 최순실 게이트는 청와대와 정부는 물론 체육계, 의료계, 교육계 할 것 없이 곳곳에서 이뤄져 온 부정과 비리를 드러냈습니다.
중요한 건 문제의 태블릿 PC를 통해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전까지, 그토록 많은 관련자 중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인데요.
박조은 기자가 내부고발자의 현실을 취재했습니다.
기자
2015년 8월 26일 서울시의회 '하나고등학교 특혜 의혹' 특별위원회.
[여자 : 저는 잘 모르는 얘기입니다.]
[남자 : 저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양심의 가책을 전 느끼지 않습니다.]
그때, 한 선생님이 증언대 앞에 섰습니다.
[전경원 :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고 부끄럽지 않은 일을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와서 제가 지금 들으면서 상당히 회의를 많이 느낍니다 제가... 제가 생각하는 진실과 여기서 지금 언급되고 있는 진실들이 과연 어떤 것이 진실인지 모르지만 하나씩 짚어보죠.]
떨리던 목소리에는 힘이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전경원 : 엑셀 자료로 조작한 거죠 떨어진 아이들 올렸습니다. 솔직해야 합니다 진실해야 하고 부끄럽습니다 저도 그 한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에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서울에 처음 문을 연 자립형 사립고로 명문대 최고 진학률을 자랑한다는 하나고등학교.
선생님의 양심선언은 5년 동안 탈락권 학생을 임의로 합격시켜 온 입시 부정과 고위직 아들의 폭력 문제를 덮어준 학교의 민낯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오늘도 하얀 노트는 꾹꾹 눌러쓴 새까만 글씨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한 달째.
전경원 선생님은 학교 대신 도서관으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10월의 마지막 날, 갑작스러운 해임을 통보받았습니다.
[전경원 : 선생님 내일은 자료 몇 페이지까지 뽑아와요? 이렇게 물어봤던 애들한테 인사도 못 하고 이렇게 나오는 이런 문화가 이게 과연 정상적인가 싶기도 하고]
학교는 해임의 주된 이유로 선생님이 외부 연수에서 하나고 학생들의 정보를 유출했다는 점을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건 형식적일 핑계일 뿐, 1년 전 내부 고발에 대한 보복 징계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전경원 : 거기 개인정보도 없어요 학생의 이름이나 생년월일이나 뭐 연락처나 주민번호나 이런 걸 다 삭제하고 하는 건데 그걸 가지고서 제가 그 연수에서 개인정보를 다 노출했다 뭐 학생의 인권을 침해했다 이러면서 징계사유로 삼은 거예요]
그날의 고백은 선생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습니다.
[전경원 : 학부모들이 시위를 하게 유도하고 교육청 앞에 가서 시위하고 또 심지어 제가 업무 보는 2학년부 교무실에 제자리 옆에 상복을 입고 오셔서 학부모님들이 이렇게 침묵시위를 하면서]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조직의 배신자'라는 주변의 시선과 냉대였습니다.
[전경원 : 심지어 회식자리에서는 법인 사무국장이라는 분이 '선생님들한테 당신들 가만히 있으면 성과금 얼마 나오는지 두고 보라'고 이런 식으로까지 막 압력을 주고 저랑 아는 척을 하는 것조차도 선생님들 힘들어하는 거고 복도에서 만나도 뭐 아는 척 안 했으면 좋겠다. 라는 사인을 보낼 정도로 저랑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금기였어요.]
하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교육청이 파면을 요구한 전·현직 교장, 교감은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고 이미 교육청과 의회에서 조사가 끝난 사안인데도 1년 넘게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던 검찰은 최근 불기소 처분으로 수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전경원 : 입시 부정은 이건 정말 우리 사회에서 계층 이동의 통로를 아예 막아버리는 거잖아요 희망을 없애는 이런 부정한 방법인데 우리 사회가 어떤 그런 특권층들만을 위한 어떤 흐름이 강한 것 아닌가 이런 회의감도 사실 있습니다.]
지난 2012년 3월, 우리는 카메라 앞에 굳은 표정으로 선 이 젊은 남성을 기억합니다.
[장진수 : 지하에 대용량 파쇄기가 있었는데]
당시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던 장진수 씨는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 사찰과 증거 인멸을 폭로했습니다.
그리고 4년이 흘렀습니다.
[장진수 : 여기 계시는구나]
[남자 : 잘 지냈어요?]
[인장진수 : 잘 있습니다」
장 씨는 요즘도 내부 고발자들을 지원하는 이곳 호루라기 재단에 들르곤 합니다.
수사도, 재판도 다 끝났지만 그는 여전히 내부 고발자로, 내부 고발자의 고통을 안고 살아갑니다.
[장진수 : 2013년 11월에 이제 대법원에서 유죄가 제가 확정이 돼서 그 파면, 파면하고 거의 같은 건데 사실은 조금은 다른데 명칭은 당연 퇴직이라고 그러는 건데요. 2013년 11월에 공무원을 이제 그만두게 됐죠.]
장 씨는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이듬해, 증거 인멸 혐의로 공무원직 파면에 해당하는 형을 확정받았습니다.
물론 장 씨가 민간인 사찰의 증거를 없애는 데 동참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건, 당시 증거를 없앤 건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최말단 직원으로 윗선에 지시에 따른 것이었고, 무엇보다 장 씨가 진실 규명의 결정적 제보자란 점들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장진수 : 장진수처럼 하지 마라 장진수처럼 하면 너네는 장진수하고 똑같은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시사점을 주는 것 같아요.]
직장을 잃은 가장에게 제일 절실하고 또 지속적인 고통은, 먹고 사는 일입니다.
[장진수 : 아내가 사실은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위기감을 많이 느꼈던 모양이에요. 동네에 조그만 국숫집을 하나 내서 하고 있는데..네, 아직 그걸로는 이 자영업이 굉장히 어렵다. 그걸로는 생계를 완전하게 꾸리기는 어려운 상황이고]
막막함과 불안함이 계속되면서 한때 심리 치료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장진수 : (장진수 생각하는 포즈) 그때는 굉장히 외롭다고 느끼고 혼자서 그리고 뭐 어떻게든 될 거라고 믿지만 딱히 그림인 눈 앞에 보이지도 않고]
장 씨는 이제 마음이 편해졌다고 여러 번 웃어 보였지만, 깊은 상처는 카메라 앞에서 쉬이 가려지지 않았습니다.
[장진수 : (한숨) 그러니까요.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고 지금 제가 어디 어느 기업에 간다고 그랬을 때 어떤 사람들이 고운시선으로 봐줄까 봐 뭐 이런 생각도 들고...]
[기자 : 막막하신가 봐요.]
[장진수 : 네... 그런데 분명히 무슨 일을 해야 할 거예요. 앞으로 일하긴 해야 할 겁니다.]
서로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두 사람이 지키고 싶었던 것은 오로지 하나, 진실이었을 겁니다.
그들의 결론은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같은 선택을 하겠다고. 하지만, 이런 현실에서, 과연 다른 누가 또 용기를 내 우리 주변의 부정과 비리, 또 다른 최순실과 정유라를 고발할 수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박흥식 교수 : 아무나 견디지 못해요 견뎠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온전히 사회에 복귀하지 못하고 사회에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아주 법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아주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인간이 존재의 의미를 갖다가 무시하는 식으로 대우를 받으면 얼마가지 못해요 너무 그게 보편적이고 굉장히 잔인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