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제가 한대 맞겠습니다.”
수화기 너머, 일면식도 없는 ㄱ교사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그는 지난해 큰 논란이 됐던 서울 충암고 ‘급식비리’를 세상에 알린 공익제보 교사였다. 최근 1학년 담임을 새로 맡았는데, 다른 비리로 퇴출당한 ‘실세’ 전 이사장이 노발대발하는 바람에 입학식까지 다 치러놓고 담임에서 쫓겨났다. 공익제보 탓에 보복을 당한 셈이다. 동료 교사로부터 제보를 받은 나는 당장 기사화하겠노라며 ‘파르르~’ ㄱ교사한테 전화를 걸었던 참이다.
ㄱ교사는 마음 정리가 끝난 듯 느리고 담담한 어조로 당부했다. “학생들을 생각해서 급식비리 문제를 제기했지만 학교 입장에서는 제가 소란을 피운 거잖아요. 사회적 논란을 의식해 못한 거지만 학교가 저를 징계하지 않았어요. 언론이고 뭐고 신경 안 쓰고 공익제보자를 징계하는 사립학교들도 많아요. 이렇게라도 한번은 학교 쪽이 저한테 분풀이라도 하게 해주고 싶어요. 명분으로나 논리로나 말 안 되는 보복을 당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급식비리 문제로 고생한 학교 관계자들한테 한번은 맞아줘야겠다 싶어서 수용했습니다. 기자님께는 좋은 기삿거리가 되겠지만, 기사로 쓰지 않으시는 게 제 바람입니다. 이번에는 그냥 지켜봐 주시고 다음에 또 맞으면 연락드릴게요.”
정의감 넘치는 열혈 교사와의 ‘맞장구’를 예상하고 전화를 걸었다가, 세상을 초월한 구도자 앞에 선 풋내기가 된 기분이었다. 종교인 설교도 아니고, 학교가 때리면 뺨을 내주겠다는 선생님의 말은 감동에 앞서 충격에 가까웠다. 기자로 만난 취재원 가운데 열에 아홉은 잘한 일을 홍보하거나 잘못한 일을 감추고 싶어 한다. 더러 선행을 굳이 알리려 하지 않는 겸손한 분도 있다. 그러나 ㄱ교사처럼 왼손이 당한 억울함을 오른손도 모르게 하겠다는 취재원을 만난 적은 없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참여연대로부터 ‘올해의 의인상’을 받을 때 실명 비공개를 조건으로 내걸었던 이도 ㄱ교사였다.
그는 충암고 급식비리를 세상에 알린 대가로 담임 퇴출 이전에도 여러 고초를 겪었다. 급식 운영을 문제 삼았다가 학교로부터 징계 압박을 받았다. 급식업체로부터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 고발을 당했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급식비리 의혹을 제보하러 교육청을 찾았다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녹취)으로 상담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애들 밥 한끼 잘 먹여보려다 이 정도 불이익을 당했으면 확성기를 들고 억울함을 호소할 법도 한데, ㄱ교사는 “수업 준비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며 조용히 몸을 숨겼다. 좀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ㄱ교사가 급식비리를 들춰내기까지, 그 고뇌가 어땠을지 짐작이 갔다.
피해 당사자의 요구로 묻힐 뻔했던 충암고 담임퇴출 사건은 지난 4일 결국 <한겨레>를 통해 기사화됐다. 동료 교사들의 설득과 서울시교육청의 경위 파악 등 상황 변화로 인해 ㄱ교사가 기사화를 허락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지난해 이슈가 됐던 충암고의 급식비리나, 교감 막말 사건 등에 비하면 반향이 적었다. 어린 학생들한테 직접 가해진 불법행위가 아닌 탓에 주목도가 떨어졌다.
전정윤 사회정책팀 기자
ㄱ교사가 담임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 또 다른 보복을 당하지는 않을지 현재로선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우리 사회가 ㄱ교사의 피해에 침묵한다면, 우리 아이들이 부실한 급식을 먹든 부당한 대우를 받든 그 소리 없는 아우성을 학교 밖으로 드러내줄 선생님을 만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공익제보 교사를 보호해야 할 책임이 교육당국은 물론 이 땅의 미래 세대를 아끼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전정윤 사회정책팀 기자 ggu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