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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공익위한제보에 배신자 낙인-삶이 망가졌다

  • 호루라기
  • 2016-04-20
  • 조회수 245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502228&code=11131100&cp=du

 

[내부 고발자 3인이 말하는 ‘그날, 그 후’] 공익 위한 제보에 배신자 낙인… 삶이 망가졌다

입력 2016-04-19 04:00

 

[내부 고발자 3인이 말하는 ‘그날, 그 후’] 공익 위한 제보에 배신자 낙인… 삶이 망가졌다 기사의 사진
      
자신이 속했던 조직의 비리 등을 용기 있게 고발했던 안종훈 조성열 유영호씨(왼쪽부터) 모습. 이들은 고발 이후 사회의 외면 속에 일자리를 잃고 힘겹게 버티고 있다. 국어교사였던 안씨는 학교로부터 직위해제 통보를 받았고, 청소년수련관 관리주임이던 조씨는 경기도 하남시 종친회 땅에서 매실 농사를 짓고 있다. 전 감리단장 유씨는 다시 현장에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유씨 사진은 참여연대 제공.
‘내부 고발’ 이후 남은 것은 ‘배신자’라는 낙인뿐이었다. 2014년 자신이 근무하던 공공기관의 회계 비리를 제보한 A씨는 정중히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제보는 상당부분 사실로 밝혀졌지만 그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면서 내부 고발은 ‘잊고 싶은 과거’가 돼버렸다.
 
내부 고발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인터뷰에 응한 안종훈(44) 조성열(67) 유영호(56)씨에게 ‘고발 이후’를 물었다. 그들이 겪고 있는 일상은 생각보다 가혹했고, 조직과 사회는 내부 고발자에게 냉혹했다.
 
입 여는 순간 철저히 ‘혼자’가 된다 
 
내부 비리에 대해 입을 연 순간부터 안씨는 철저히 혼자가 됐다. 동구마케팅고등학교 국어교사였던 안씨는 2012년 서울시교육청에 학교 행정실장의 비리를 확인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학교는 색출작업을 벌였고 결국 안씨가 민원인으로 지목됐다. 이후 학교는 두 차례에 걸쳐 안씨를 파면했다. 행정심판을 통해 지난해 복직했지만 학교 측은 지난달 21일 다시 안씨에게 직위해제를 통보했다. 동료 교사 몇 명이 ‘고생한다’고 연락해 왔지만 공개적으로 안씨 편에 서주는 사람은 없었다. 
 
행정심판을 거쳐 지난해 다시 돌아온 학교는 싸늘했다. 주변 동료들은 “당신 때문에 시끄러워졌다”고 했다. 학교 측은 아예 안씨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그에게 수업 대신 급식·청소 지도를 맡겼다. 안씨는 부당한 처우에 괴로워하다 6개월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학교 측이 안씨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만 10여건이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안씨는 다시 내부 고발에 나설까. 안씨는 “고민하다가 결국엔 (고발)했겠죠. 학생들을 위한 일인데요”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주변의 작은 비리들이 언제든 드러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우리 사회가 가질 필요가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그날 이후 가족의 대화는 멈췄다 
 
“그때부터 대화란 게 없어졌지.” 조씨는 내부 고발 당시를 떠올리며 말을 꺼냈다. 서울의 한 청소년수련관에서 관리주임으로 일하던 조씨는 1997년부터 수련관 운영법인의 공금횡령 비리를 문제 삼았다. 비리가 계속되자 조씨는 99년 시민단체에 이런 사실을 알렸다. 서울시는 감사를 통해 해당 법인의 횡령 사실을 밝혀냈지만 조씨는 해고됐다. 일자리를 잃었지만 가족에게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아내와 두 아들도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전업주부였던 아내는 가사도우미 일을 시작했다. 고등학생이던 두 아들의 학교 등록금을 낼 수 없게 되자 어느 독지가가 대신 등록금을 내주기도 했다. 두 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대출을 받아가며 혼자 힘으로 대학을 다녔다. 그는 아직도 내부 고발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했다. “제보만 하지 않았더라도 애들 하고 싶은 거 시켜줄 수 있었을 텐데. 퇴직금도 연금도 못 받았다. 나한테는 후유증이 평생 가는 거지.”
 
“나처럼 내부 고발하라고 권유 못해” 
 
 “후회는 없어요. 그런데 저처럼 하라고는 차마 입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유씨는 2009년 전북 군산의 한 공사현장에서 감리단장으로 근무하다 미운털이 박혀 해고됐다. 시공사의 부당한 설계 변경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 7월 유씨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이 내용을 알렸고 결국 유씨가 지적한 문제는 사실로 드러났다.
 
그 사이 감리업체는 유씨가 ‘청렴 의무’를 위반했다며 심각한 흠이 있는 것처럼 전국 업체들에 공문을 뿌렸다고 한다. 유씨는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지금까지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시공사는 유씨에게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생활비에 소송 비용까지 부담하다보니 빚을 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아내가 가사도우미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주변에서 ‘적당히 하라’고 말렸지만 유씨는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그러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제보한 공사 현장은 아직도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유씨는 “하루 빨리 진실이 밝혀져 다시 현장에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공익제보자 지원단체 ‘호루라기 재단’은 지난 8일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씨와 유씨 등 내부 고발자 6명에게 각각 300만∼500만원의 기금을 전달했다. 지난해 익명의 독지가가 ‘내부 고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도와 달라’며 5년 동안 1억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면서 기금이 만들어졌다.
 
호루라기 재단이 내부 고발자 42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대부분 조직으로부터 불이익을 받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등 정신적 고통이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상석 재단 상임이사는 “고발 이후에 겪는 어려움을 도와주고 내부 고발을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정착돼야 한다”며 “내부 고발자는 해당 기관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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