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신고자란, 진실을 밝힐 목적으로 자신의 속한 기관이나 기업, 조직이 저지른 부패나 비리를 폭로하는 사람을 말한다. 과거에는 내부고발자, 공익제보자 등으로 불려왔는데 공익신고자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이들을 보호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국회에서는 2001년 ‘부패방지법’, 2011년 ‘공익신고자 보호법’을 제정해 이들을 보호할 법적 제도적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아직도 공익신고자는 직장 내 차별과 보복 등으로 오히려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공익신고자를 보호하고 바람직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과제와 제도적 대안은 무엇인지 <추적60분>이 심층 취재했다.
■ 농부가 된 엘리트 엔지니어, 잃어버린 15년
한 대기업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던 정국정 씨는 1996년 납품 비리를 회사 감사실에 제보해 사건 전모를 밝혔다. 회사의 손실을 막아 뿌듯했다는 정 씨. 하지만 2년 뒤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다. 정 씨가 퇴사를 거부하자 이후 회사 내에서 괴롭힘이 가해졌고, 2000년 결국 해고됐다.
정국정 씨는 이후 복직을 요구하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투쟁을 이어갔다. 해고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2심 승소하기도 했으나 파기환송심에서 패소하고, 2012년 대법원에서 최종 상고 기각될 때까지 재판은 15년이 걸렸다.
“공학석사였던 제가 이제는 고향에서 블루베리를 재배하는 농부가 되었습니다.
제 시간은 아직도 징계로 해고된 37살에 멈춰 있는 것 같네요.” -정국정 씨 인터뷰 중
《추적60분》은 경상남도 농촌에서 정국정 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에게 대한민국 1세대 공익신고자로서 지나온 여정과 그 의미를 들어 보았다.
■ 제보자의 신분을 누설한 자는 누구인가
이은정(가명) 씨는 2015년 경상북도 영덕군의 한 중증 장애인 복지시설에 취업한 이후 시설 종사자들의 장애인 학대를 목격했다. 시설 측의 묵인을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이후 2016년, 2019년, 2020년 여러 학대행위가 있을 때마다 관련 기관에 세 차례 공익제보로 신고했다.
‘장애인복지법’상 복지시설이 학대나 인권침해로 세 차례 행정처분을 받으면 시설 폐쇄를 하도록 정해져 있다. 시설은 법에 따라 폐쇄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이 씨에게 권고사직 요구와 직장 내 괴롭힘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씨는 국민권익위원회를 통해 법적으로 보장된 공익신고자 신분 보장을 요청했고, 공익신고자임을 인정받았다. 고용노동부로부터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로도 인정받았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퇴직할 수밖에 없었다. 이 씨가 직장 내 괴롭힘의 대상이 된 이유는 행정처분 과정에서 신고자의 신원도 함께 통보됐기 때문이었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르면 누구든지 공익신고자의 동의 없이 그들의 인적 사항이나 신고자임을 알 수 있는 사실을 공개 또는 보도할 수 없다. 공익신고자 신변 보호 의무가 있는 지방자치단체 담당 공무원이 이를 유출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공익신고자로 인정받아도 보호 조치는 나몰라라
《추적60분》은 6년 전 공익신고를 했지만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는 김현철 교수를 만났다. 모 대학교 입학홍보처장으로 재직했던 김 교수는 2019년, 학교의 입시 비리를 기자회견으로 세상에 밝혔다. 해당 내용은 이듬해 교육부의 실태 조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났고, 2022년 검찰은 관련자들을 기소했다.
하지만 공익신고 이후 6년, 김현철 교수는 입시 비리 사건의 공범으로 재판에 넘겨졌고, 검찰 조사 이후 12차까지 이어지는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힘든 건 학교 측의 무고와 명예훼손을 빙자한 고소였다고 한다. 해당 혐의는 불송치로 끝이 났지만, 그는 해고무효 소송을 포함한 1건의 형사 사건과 2건의 민사 사건에서 5천만 원이 넘는 변호사 수임료를 홀로 감당하고 있다.
“아버지께서 정의로운 일을 하셨기 때문에 계속하셔라, 우리 가족은 늘 응원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너무 힘든 상황에서 아버지를 잃게 될까 봐··· 그게 좀 무서웠어요.” - 김현철 교수 자녀 인터뷰 중
2021년 8월 김현철 교수는 국민권익위에서 공익신고자임을 인정받았지만, 보호 조치와 변호사 수임료 지원을 위한 구조금은 한푼도 지원 받지 못했다. 김현철 교수는 지금도 국민권익위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있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1년까지 권익위에 보호 조치를 신청한 공익신고자 10명 중 4명만 보호 조치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국민 권익을 담당하는 권익위는 공익신고자 보호에 있어서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은 2023년 국제투명성기구(TI)가 조사한 부패인식지수(CPI)에서 100점 만점에 63점으로 ‘상당히 청렴한’ 국가 등급을 기록했다. 이는 1995년 첫 집계에서 43점, ‘상당히 부패’ 등급을 기록한 이후 점차 점수가 오른 결과다. 이는 우리 사회의 부패와 비리를 막기 위해 수많은 공익신고자가 헌신한 결과이기도 하다.
2000년대 이후 공익신고자에 대한 보호와 보상·포상 규정은 계속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취재 결과 사각지대에 놓인 공익신고자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 《추적60분》 1374회, ‘공공의 적? 공익신고자 수난사’ 편은 7월 19일 금요일 밤 10시에 KBS1에서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