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5. 서울고등법원 제38민사부는 대한항공이 땅콩회항의 공익제보자 박창진 전 사무장에게 가한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으로 7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난해 12월, 1심 재판부는 박 전 사무장이 대한항공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2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였고, 박 전 사무장은 이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땅콩회항 사건의 가해자인 조현아에 대한 위자료 청구 부분과 대한항공이 박 전 사무장에게 행한 인사상 불이익(징계) 처분의 무효 확인 및 위자료 청구는 1심과 마찬가지로 모두 기각하였다.
재판부는 땅콩회항 사건 당시 박창진 전 사무장이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고함을 치고 파일철로 박 전 사무장의 손등을 내리치며 양 무릎을 꿇게 한 후 삿대질과 욕설을 하면서 결국 항공기에서 내리는 박 전 사무장에게 “내리자마자 본부에 보고해!”라고 소리치며 갑질의 끝을 보여준 조현아의 행위가 대한항공의 불법성보다는 ‘가볍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재판부는 조현아보다 더 ‘중한’ 불법행위를 저지른 대한항공에 대해 7천만 원의 손해배상 의무를 인정하면서도, 경력 20년 관리자인 팀장으로서 비행하던 박창진 전 사무장에게 막 입사한 초년생 승무원과 같은 보직을 부여한 대한항공의 인사조치가 위법하거나 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평소 현실과 동떨어진 턱없는 위자료를 산정하는 법원의 관행에 비추어 이번 판결이 ‘꽤 많은’ 위자료를 인정했다는 시각도 있으나, 이는 명예훼손 행위에 대해서도 5천만 원 이상의 위자료를 인정하는 등 최근 판결의 경향을 고려할 때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인격적 모욕과 사찰을 감행해 온 대한항공의 불법성을 제대로 판단한 것인지, 그리고 그에 따른 박 전 사무장의 정신적 피해를 제대로 고려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또한 대한항공의 박창진 전 사무장에 대한 ‘보임’과 관련해서는 1심의 판단과 같이 ‘평가 결과에 따른 보직의 부여로서 정당하다’고 1심의 판단을 반복하는데 그쳤다. 재판부는 대한항공이 2014. 12. 31.까지 A1자격을 취득하지 못하면 최종적으로 B자격만을 부여하기로 공지한 사실에 비추어 박 전 사무장의 한영방송자격이 2015. 1. 1.자로 B자격으로 강하되었다고 판단한 것인데, 대한항공 스스로 인정한 사실에 의하면, 2015. 1. 1. 이후 A자격을 취득하지 못한 승무원들 35명 전원이 라인팀장에 보임(한영방송 A자격은 라인팀장 보임의 필수요건이다)되었고, 이에 비추어 볼 때 위 공지에 따른 2015. 1. 1.자 자격강하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 법원은 기업의 부당한 인사조치나 인사재량권을 일탈한 보임의 불법성을 매우 좁은 범위에서만 인정하여, 사용자가 그 지위를 이용하여 노동자를 부당하게 차별하거나 교묘하게 괴롭히는 행위를 방치해 왔는데, 이번 항소심 역시 이와 같은 판결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원은 성실하고 충실하게 회사에 기여해 온 박창진 전 사무장과 같은 공익제보자들이 회사로부터 당하는 괴롭힘과 그 개인이 겪는 인격살인의 과정이 얼마나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제대로 고려하여 현실에 부합하는 판결을 내리기 위해 얼마만큼의 고민을 해보았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부당한 지시와 강요에 대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고자 한 박창진 전 사무장에 대하여 대한항공의 입장에서는 푼돈에 불과할 위자료를 받고 그들이 행사하는 인사재량권에 수긍하라는 이번 판결은 그 최소한의 존엄을 다시 한 번 짓밟는 일이나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