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일어난 학대 사건과 관련해 담당 공무원이 사건을 고발한 공익제보자의 신원을 시설 쪽에 노출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검찰은 이 공무원에게 벌금 50만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는데, 지나치게 가벼운 처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대구지검 영덕지청은 지난달 20일 공익신고자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북 영덕군청 주민복지과 소속 공무원 3명에 대해 벌금 50만원의 약식명령을 법원에 청구했다. 공무원들은 2021년 6월 장애인 학대 사실이 드러난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 ‘사랑마을’에 시설폐쇄처분 사전통지서를 보내면서 ‘처분 이유’ 가운데 하나로 “사무국장이 학대 의심 신고”라고 적어 공익제보자 신원을 그대로 노출했다.
이 시설의 사무국장이었던 공익제보자 ㄱ씨는 2019∼2020년 세차례에 걸쳐 시설 직원이 장애인을 때리는 등 학대한다고 영덕군에 신고했다. 영덕군이 경상북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ㄱ씨가 신고한 사건은 모두 ‘학대’로 판정됐다. 이 시설은 개선 명령과 시설장 교체 처분을 받은 뒤에도 또다시 학대 행위를 한 사실이 드러나 결국 시설폐쇄 행정처분을 받았다.
ㄱ씨는 2021년 6월 자신의 신원을 노출한 공무원 3명을 공익신고자보호법 위반으로 경찰에 신고했다. 애초 경찰은 ‘혐의 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가 ㄱ씨가 이의신청을 하자 재수사를 했고, 1년10개월 만에 사건이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검찰이 벌금 50만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한 것을 두고 솜방망이 처분이란 비판이 거세다. 공익신고자보호법 제30조는 공익신고자의 신원을 유출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호루라기재단은 검찰의 처분과 관련해 성명을 내어 “이번 사례는 공익신고자의 신원 유출과 같은 범죄행위에 대해 경찰과 검찰 등이 얼마나 무신경한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단의 김영희 변호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담당 공무원이 공문에 제보자를 버젓이 명시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고, 더 죄질이 나쁘다. 공익제보자를 노출하는 행위는 누구든지 중한 벌을 받게 돼 있는데 (경찰과 검찰이) ‘봐주기식’ 수사를 했다”고 말했다.
ㄱ씨는 공익신고 사실이 드러난 뒤 스스로 일을 그만뒀다. 직원들이 ‘사무국장 때문에 일자리를 잃게 됐다’며 집단 괴롭힘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영덕 읍내에는 “시설폐쇄 원인 제공한 사무국장 물러나라”고 쓴 ‘종사자 일동’ 명의의 펼침막이 여러장 붙기도 했다. ㄱ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공익제보자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일주일 동안 매일 퇴사 압박을 받았다. 휴직한 뒤 6개월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랑마을 쪽은 영덕군의 시설폐쇄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법원에 냈다. 지난해 8월 대구지법은 시설폐쇄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지만, 사랑마을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영덕군이 행정처분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사랑마을 쪽 손을 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