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사회 제주본부에서 일하는 김정구(53)씨는 ‘회사생활은 어떻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김씨는 2019년 4월 이후 사측과 지난한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마사회가 공공기관 고객만족도(PCSI) 조사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언론에 제보한 게 싸움의 발단이 됐다.
이 같은 조작 사실이 언론을 통해서라도 알려지면 회사 내에서 자정작용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김씨는 조작 의혹을 마사회 감사실에도 알렸지만 감사실은 되레 “김씨가 내부 문건을 유출했다”고 몰아붙였다. 이후 마사회는 부장이던 김씨를 직위해제했다.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까지 했다. 형사 사건은 무혐의로 종결됐다.
김씨의 제보는 약 2년이 지나서야 사실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지난해 3월 마사회 정기감사의 결과물로 감사보고서를 발표하며 PCSI 조사 조작이 실제 있었다고 확인했다. 마사회가 2016∼2018년 고객만족도 조사를 앞두고 직원 가족 등 자사 서비스에 우호적인 고객을 섭외해 조사 표본에 들어가도록 하는 등의 수법을 썼다는 것이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지만 김씨는 여전히 공익제보자로서 제대로 된 보호조치를 받지 못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김씨에 대해 신분보장조치를 결정한 걸 두고 마사회는 이를 취소해달라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6월 김씨가 감사실에서 PCSI 조사 조작을 진술한 행위를 문서화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신분보장조치 취소 결정을 내렸다. 현행 부패방지권익위법상 신고자는 신고 이유를 문서로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법원이 이를 토대로 공익신고자의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한 것이다.
현재 행정소송은 2심이 진행 중이다. 김씨는 “1심에서 진 뒤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며 “‘이렇게도 판단이 되는구나’라는 생각에 자신감을 많이 잃었다”고 했다.
‘공익신고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이젠 대명제에 가깝다. 다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다. 대부분의 공익신고자는 공익신고 이후 공익신고 이전의 삶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소속된 단체나 회사의 ‘먼지떨이식’ 조사에 못 이겨 부당하게 징계를 받고, 사내에서도 배신자 취급을 받기 일쑤다. 공익신고자들이 “제보한 걸 후회한다”고 푸념하는 이유다.
30일 권익위에 따르면 지난해 권익위에 접수된 공익신고자의 보호조치 신청은 126건에 달한다. 2017년(28건), 2018년(53건)과 비교하면 크게 늘었다. 2019년과 2020년에도 각각 131건과 125건의 보호조치 신청이 접수됐다. 보호조치엔 신변보호, 불이익조치 금지 등이 포함된다. 보호조치 신청이 늘었다는 건 공익신고자에 대한 보복도 꾸준히 늘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양성우 변호사(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실행위원)는 이날 열린 ‘판례분석을 통한 공익제보자 보호제도 강화 모색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해 “(법원이) 일부 사안에서 법에서 정한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해 내부 제보, 고발을 위축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범준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역시 공익신고자가 겪는 보복을 언급하며 “공익신고자는 공익신고 이후 지속적이고 집요한 보복조치로 인해 여러 징계사유에 해당돼 있을 개연성이 크다”며 “공익신고자의 불이익 처분을 판단할 땐 공익신고자가 징계사유 해당 행위에 이르게 된 전체적 맥락을 판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